······ 이 책에 기록한 것처럼 보수주의 운동은 애초부터 반민주적이며 권위주의에 매료되어 있었다. <내셔널 리뷰>에서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칭송하고 남부 백인들이 흑인들의 참정권행사를 막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때부터 그랬다. 이런 반민주적이며 권위적인 보수주의 운동의 행태는 변한적이 없다. 현대 미국에서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 투표권을 두고 충돌했을 때 진보주의자들은 언제나 시민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려고 애쓰는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항상 일부 시민들의 투표를 막기 위해 애썼다.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 정부의 특권을 두고 충돌했을 때, 진보주의자들은 항상 정부가 적법 절차를 밟아야한다고 주장한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권력을 쥐고 있는 정부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9.11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는 대통령에 대한 어떤 비난도 비애국적인 행위로 간주하는 대단히 비미국적인 정치 분위기를 조장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결과에 만족했다.
나는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서는 극심한 빈부격차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유, 그리고 법치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진보주의자이며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 ······
······ 만약 새로운 진보주의 운동이 성공하면 당파성은 결국 줄어들게 될 것이다. 1950년대에는 사회보장제도와 노조를 지지하면서도 양심에 거리김 없이 아이젠하워에게 투표할 수 이었다. 이는 공화당이 결국(일시적이었지만) 뉴딜의 성과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 시대와 같은 정치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분별있는 두 정당이 미국을 위한 최선책은 모두 받아들이고, 모든 국민들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경쟁하며, 서로가 공정하도록 독려하던 그 시대로 말이다.
지금 실천하는 진보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진보주의 운동가가 된다는 것이고, 진보주의 운동가가가 된다는 것은 당파성을 띤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종목표는 일당독재가 아니라 진정으로 살아 있는, 자유로운 경쟁에 의한 민주주의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결국 진보주의자가 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
이 책에서 미국이 민주주의와 멀어지며 중산층이 몰락하고 갈수록 빈부격차가 커지며 사회 여러분야에서 발생하는 잡음들의 원인을 공화당의 꼴보수 정책 때문이라고 말한다. 소수의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면서도 어떻게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서 민주당을 밀어내고 지금까지 대부분의 정권을 장악해서 이렇듯 불평등의 정치를 실천했는지 신빙성있게 설명한 책이다. 본인의 얕은 지식으로는 이 책을 비판적으로 바라 볼 수는 없지만 모두가 평등하고 인간적인 삶과 가까워 지기 위해서는 우리는 정치와 정책에 관심을 기울이고 지식을 쌓으며 정말로 옳바른 길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무지하면 휘둘리고 휩쓸린다. 방관하거나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고통을 선택한 것이다. 이기적이며 권위적인 자들에게 우리의 인생을 맡겼으니 말이다.